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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외롭고 고독하다면 잘 살고 있다는 뜻
작성자 정혜연 등록일 2023.12.07

   IMG_13194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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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하지 않은 인간은 없으며 고독은 인간 정신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존재함으로써 만물과 관계를 맺고 살지요. 존재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늘 잘 소통된다면 좋겠지만 관계가 항상 소통되는 것은 아니지요. 소통이 어긋나거나 단절될 때 우리의 인식은 관계를 포함한 우리에서 오직 나 하나로 한정됩니다. 고독을 경험하게 되지요. 실존주의에서도 고독을 빼놓고는 실존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심연을 누가 알겠습니까? 정신의 용량을 측정할 수 있을까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이지요. 우리는 내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바라지요. 우리는 그리도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나도 나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받아들여지기를 꿈꿉니다.

우리는 이해받기를 참 좋아하고 오해받기를 참 싫어합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그런 자기 자신을 스스로는 이해하고 있는지요? 나의 무엇을 이해받고 싶어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도 이해받고 싶은 그 영역은 사실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영역인 것이지요. 지금 가만히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해 봅시다.

 나는 나를 잘 이해하고 있나? 남들은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을 하고 나면 역시나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나를 먼저 이해하는 것입니다.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해달라고 남들에게 자꾸 들이댈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합니다.

 

 내가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실로 고독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고독의 한가운데에서 외롭지만 견뎌 보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외로워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면 어쩌면 생애 최초로 내가 내 마음을 만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고독해져야 합니다. 나만이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사실 고독 때문에 삶은 교착된 국면을 풀고 새롭게 전개되기도 합니다. 완전한 고독에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고독이 생명을 길어 올리는 샘이기 때문입니다. 고독 가운데에 우리는 알몸으로 자기 자신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도달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기 자신이 있는 곳까지 고독은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절멸의 시공간에 스스로를 던지는 고독.

고독은 헛된 것들을 끊어 냅니다. 절멸이 되는 것은 이 삶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았을까요?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듯이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도취 되어 진정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깨어나서 보는 세상은 오히려 우리를 불편하게 할지 모릅니다. 정말 헛된 삶으로 돌아가고 싶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지 않나요?

바닷물을 아무리 들이켜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삶의 곳곳에서 체험하고, 환상을 꿈꾸며 어딘가로 달려갔다가 몇 번이나 돌아섰는지 자기 자신은 알고 있지요. 어쩌면 드디어 고독을 선택할 용기를 낼 수 있기까지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가 봅니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는 것. 그 상태를 유지하고 섣불리 아무 관계 속으로나 되돌아가지 않는 것, 그 용기는 고독한 사람이 끝내 자기를 발견할 때까지 그 자신을 독려합니다. 고독과 함께, 고독 안에서, 고독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를 배신하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매트릭스에서 진정으로 깨어난 사람은 스스로 삶을 살아가기로 합니다. 고독하지 않고 이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것이 생의 참맛이라는 것을 압니다.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하며, 스스로를 기만하며 헛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고독은 그러니까 삶과 생생히 연결되어 있다는 반증입니다.

 고독하지 않던 사람이 고독해졌다면 그것은 이제야 비로소 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실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으며 그 고독 속에서 삶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직면하기 어려웠던 자기를 만나면 고독은 이제 친구가 됩니다.

 

 , 가장 큰 적이 친구가 될 때 우리는 상실했던 내 안의 가장 큰 부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밖에서 볼 때는 거센 태풍이 그 한가운데 서면 고요하듯이, 안에서 만나는 고독은 더 이상 고독이 아닙니다.

자기 삶을 사는 사람에게 고독은 친구이자 말벗이 되어주며 밖에서 보던 그 위력을 잃고 가장 진실한 삶을 살게 하는 친절한 조언자가 됩니다. 고독의 표피에서 외로움을 핥기만 하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내가 알고 있던 나를 포기하는 용기를 내면서 고독의 중심을 향해 들어갈 때만 알 수 있는 것들. 그것들을 배우며 관계를 통해 삶을 반전시킵니다.

고독은 준비가 되면 매트릭스 속으로 뛰어들라고 합니다. 다시 고독의 외부에서 나는 무엇을 합니까? 사람과 연결하며 진실한 삶을 살도록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며 매트릭스 안에서 생명의 꽃을 피웁니다. 언젠가는 자기가 머무는 곳에 생명이 만발한 곳이 되기를 꿈꾸며 꽃이 피는 곳에 따로 있지 않으며 온갖 군데 존재하는 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이제 외부도 내부도 없어지면 진정 고독은 사라집니다. 고독은 고독을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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